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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보면 더 재밌는 영화 '곡성' (주요 상징 및 인물 해석)

by belicia 2025. 6. 16.

2016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서는 상징과 해석의 보고로, 개봉 이후 지금까지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는 작품이다. 민속 신앙, 종교, 미신, 인간의 본능적 불신과 혼돈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는 이 영화는 복선과 디테일, 상징이 조밀하게 얽혀 있어 한 번의 관람으로는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이번 글에서는 곡성 속에 등장하는 핵심 상징들과 미장센의 역할, 그리고 인물 해석을 통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한다. 곡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디테일을 하나씩 짚어보자.

 

영화 '곡성' 포스터 - 한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과 배경의 세 사람 얼굴
영화 '곡성' 포스터

주요 상징 분석 – 곡성의 염소, 붉은 옷, 버섯

곡성 속 상징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종교적 의미, 문화적 배경, 심리적 암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단연 염소다. 기독교와 유대교에서는 염소가 속죄양, 즉 공동체의 죄를 대신 짊어진 존재로 사용된다. 곡성에서 일본인이 염소를 끌고 나타나는 장면은 그가 단순한 외지인이 아닌 초월적 존재, 혹은 악마적 실체임을 암시한다. 특히, 그 염소가 등장할 때마다 주변 인물들에게 변화가 생기거나 불운이 닥친다는 점에서, 염소는 재앙을 이끌고 다니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또 다른 주요 시각적 상징은 붉은 옷을 입은 무명이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생명력, 피, 분노, 신성 등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죽음과 관련된 공포의 색이기도 하다. 무명은 중립적 존재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악마를 추격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그와 공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면성은 곡성의 전체적 메시지인 '믿음의 혼란'을 시각적으로 체현한 것이다.

버섯과 곰팡이류 식물들 역시 영화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부패, 죽음, 생물학적 오염을 상징한다. 일본인의 집 주변, 혹은 피해자 집에서 자라는 이 버섯은 마치 그들이 저주받았거나 이미 죽음의 기운에 물들었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죽은 시체에서 자라는 균류는 생물학적으로도 사후 세계와 연결된 이미지로 해석된다. 이런 세세한 시각적 상징들은 곡성을 단순 공포영화가 아닌 ‘상징언어’로 가득 찬 미장센 중심의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미장센과 연출 – 공포를 만들어낸 시각 언어

곡성의 공포는 단순히 피를 보이거나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빛과 어둠, 색채의 흐름, 화면 구성을 통해 점진적이고 심리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영화 초반에는 따뜻한 색조와 자연광, 마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등장하며 마치 시골 마을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색감은 점차 차갑고 무거워지며, 조명 또한 인공적인 느낌으로 전환된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이 붕괴되어가는 과정과 맞물려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카메라 연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프레임 속 프레임 기법이다. 이는 등장인물이 문틈, 창문, 거울 등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에서 타인을 관찰하거나 감시받는 장면에서 자주 사용된다. 이 구조는 인물들의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세상과의 단절, 혹은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연결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종구가 일본인의 집을 방문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감시’ 혹은 ‘불법적 침입’ 같은 무언의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사운드와 굿 장면의 리듬은 매우 독창적이다. 굿 장면은 약 10분가량 롱테이크와 클로즈업을 오가며 촬영되었는데, 그 속도와 리듬은 실제 무속 의식처럼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북과 장구 소리, 무당의 외침은 관객에게도 일종의 주문처럼 다가오며, 이 장면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진짜 '의례'로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연출은 곡성을 ‘체험하는 영화’로 만들며, 시청자에게 심리적 자극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인물 해석과 숨겨진 단서들 – 누가 악인가?

곡성에서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악의 정체'이다. 일본인이 모든 사건의 배후인 듯 보이지만, 영화는 그의 정체를 단 한 번도 확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따로 있는 듯하며, 그 또한 무언가에 쫓기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의 카메라에는 죽은 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시체 근처에는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단서들이 모두 ‘그가 악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무명의 존재 역시 해석이 갈린다. 그녀는 종구에게 일본인을 쫓으라고 하고, 일본인에게는 자신이 쫓고 있는 자가 있다고 말한다. 양쪽 모두 진실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서는 그녀조차 의심스러운 인물로 전락한다. 특히, 그녀가 종구에게 말하는 “당신이 의심하면 모두 죽는다”는 경고는 오히려 그가 믿지 말아야 할 자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종구는 끝까지 혼란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로서 딸을 구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명과 일본인의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결국 비극을 자초한다. 중요한 장면 중 하나는 그가 일본인의 정체를 추궁하러 갈 때, 일본인의 눈에서 순간 붉은 안광이 반짝이는 장면이다. 이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초자연적 존재'임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종구의 판단이 틀렸음을 뒷받침한다.

영화는 누가 악인지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에게 ‘당신은 누구를 믿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종교와 믿음, 의심 사이의 혼란을 스스로 경험하게 만든다. 이로써 곡성은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판단과 해석을 내려야 하는 ‘체험형 서사구조’를 지닌 작품이 된다.

곡성은 반복해서 볼수록 더 많은 의미가 떠오르는 영화다. 각 장면의 소품, 대사, 시선 처리 하나하나가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들 때 비로소 이 작품의 진면목을 마주할 수 있다. 곡성은 그저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판단을 요구하며, 결국 당신 스스로가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그렇기에 곡성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해석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